이런사람 또 없습니다. 이것 생활화하는 한 청년의 이야기
“세상을 바꾸는 건 어려워 보이지만 나를 바꾸는 것은 쉬워요.”
이런 신념으로 기부를 이어온 지 10년째. 최성홍(36)씨의 사연이 가슴을 울리고 있습니다.
최씨는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가족 모두가 뿔뿔이 흩어져 생활했죠. 어린 최씨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다고 합니다.
어머니와의 불화, 학교 내 괴롭힘 등으로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불가능했던 그는 14살에 자퇴를 했습니다.

최씨가 22세가 되던 해, 유일한 동거인이었던 어머니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 월세 낼 돈조차 없어 외할머니 집, 절 등을 떠돌아다니던 그는 서울에서 일하는 누나를 따라 무작정 상경했습니다. 최씨는 우선 학원에 등록해 공부를 시작했고, 25~26세 때 중학교·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차례로 통과했습니다.
고졸이 됐지만, 취업할 곳은 마땅치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공사장 일용직 자리 등을 전전하다가 스물일곱 살 때 서울 동대문구 A고등학교 급식실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 학기를 일하고 나니 수중에 모인 돈은 300여만원. 그중 100만원을 A학교에 기부했습니다. “월급을 받으니 뿌듯하기도 하고 막연히 좋은 일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10년 기부’의 첫걸음이었습니다.
최씨의 기부금은 A학교에 재학 중인 학 학생에게 전달됐습니다. 그는 그 학생과 처음 만난 날을 잊지 못합니다. “학생을 만나기 전 교장 선생님께 학생 사정을 들었는데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라고요. 저만큼 불행한 삶을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씨는 그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만큼 많이 울었습니다. “학생이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고 하는데,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생겼죠. 제가 살면서 가졌던 그 어떤 마음보다 순수했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날의 결심으로 최씨는 벌써 10년째 선행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의 도움을 받은 학생만 14명에 달합니다. 비정규직 수입으로 빠듯한 생활을 해야 했지만, 기부만큼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월수입이 100만원이 채 안 되는 날도 많았어요. 몸이 안 좋아 병원에 갔는데 치료비 낼 돈이 없어 어려웠던 적도 있어요.”
지금도 여유로운 편은 아닙니다. 올 초까지 재직하던 핸드백 회사가 부도 위기에 처해 정리해고를 당했고, 지금 일하는 무김치 공장에서도 부당해고를 당했다가 간신히 복직했습니다.
그런데도 최씨가 기부를 계속하는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을 보면 제 불행했던 어린 시절이 기억나요. 제가 돕는 학생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면 좋겠어요. 제 인생보다 지금까지 도와준 학생들의 앞날이 잘 되기를 멀리서나마 간절히 기도해요.”
최씨는 지난 12일에도 서대문구 B고등학교에 100만원을 전달했습니다. 조금 더 안정된 직장을 갖게 돼 더 많은 금액을 기부하는 게 꿈이라는 최씨.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

세상을 바꾸는 건 어려워 보이지만 나를 바꾸는 건 쉬워요.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면 그 누군가가 또 다른 이에게 좋은 영향을 줄 거에요. 그렇게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다고 저는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