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때는 000 하나만 가지고 가겠소
과거 원로배우로써 성공한 자산가인 한 원로배우가 말했습니다.
그가 최근 다시한번 놀라운 일을 했는데요. 어떤일일까요?
실향민

원로배우 신영균(91·사진)씨는 1928년 황해도의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신영균 씨는 서울대 출신의 잘나가는 치과의사, 사업가, 배우로 다양하게 활동한 예술인입니다.
그는 1960년 조긍하 감독의 ‘과부’를 통해 데뷔한 후, 60여 년간 영화 ‘연산군’ ‘5인의 해병’, ‘대원군’ 등 294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이후 1978년 영화 ‘화조’를 끝으로 충무로에서 은퇴했습니다.
“이제 내가 나이 아흔을 넘었으니 살아봐야 얼마나 더 살겠습니까. 그저 남은 거 다 베풀고 가면서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어요. 나중에 내 관 속에는 성경책 하나 함께 묻어 주면 됩니다.” 신씨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 술·담배는 물론 여자와 도박도 멀리해 왔습니다.
원칙 하나만큼은 절대 놓치지 않았다고 자부하며 남은 거 다 베풀고 가면서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다 말했습니다. 또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신씨는 나중에 내 관 속에는 성경책 하나 함께 묻어 주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구절

그저 마지막으로 내가 가지고 갈 거는 40~50년 손때 묻은 이 성경책 하나라 말했습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고린도전서 15장 10절이다.
‘내가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람들보다 더 많이 수고를 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오 오직 하나님과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수백억 기부한 원로

그는 이미 10년 전인 2010년 10월 명보극장과 제주 신영영화박물관 등 500억 원 규모의 사유재산을 사회에 기부해 화제를 모은 바 있습니다.
모교인 서울대에도 시가 100억원 상당의 대지를 발전기금으로 기부했다. 배우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60~70년대에 많게는 1년에 30편씩 영화를 찍어 가며 모아 온 재산입니다.
1960~70년대 한국 영화계를 이끈 배우였으며 그는 “앞으로 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아직 구체적 계획까지 세우진 않았지만 “영화계 지원과 후배 육성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겠다”고 말했습니다. 연예계 최고의 자산가로 이름난 신씨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으로 꼽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