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개막한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기 유도대표팀에 대견한 선수가 있습니다.
주인공은 바로 여자유도의 실력자라고 불리는 선수인데요. 무슨일일까요?
한국유도의 새로운 간판

유도선수 허미미는 조부모와 아버지가 한국인, 어머니가 일본인인 선천적 이중국적자라서 학창시절 대한민국 청소년 대표로 뛴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서 태어나 줄곧 일본에서 살다가 대한민국 국적을 선택하였기 때문에 한국어를 잘 못합니다.
태극기를 달고 일본어로 인터뷰를 하는 희한한 광경을 볼 수 있는데, 한국어를 정식으로 배운 적이 아예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2023년 현재 한국으로 귀화를 한 이후부터는 한국어도 많이 유창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허미미가 한국 국적을 선택한 것은 할머니의 유언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의 조모가 생전에 여러 차례 허미미가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고 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고, 이에 한국 국적을 선택하면서 경북체육회에 입단을 하였다고 합니다.
경북체육회도 허미미 선수와 연고가 있는데,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군위군에서 활동하였던 독립운동가 허석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김정훈 경북체육회 감독이 선수 등록을 위해 허미미의 본적지에 방문했다가 군위군 관계자로부터 그가 허석 의사의 후손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이에 김 감독은 경북도청, 국가보훈처, 주일대사관 등은 물론 지역 면사무소까지 찾아다니면서 가족 관계를 조사했고, 이철우 경북도지사까지 지원하여 조사를 한 결과 허미미의 할아버지 허무부씨가 허석 의사의 증손자라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허미미는 허석 의사의 내손녀(內孫女, 5대손)입니다.
00의 후손

허석은 1857년 4월 2일 경상도 의흥현 소수면 가곡(현 대구광역시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수리 집실마을) 128번지의 빈농가에서 아버지 허전(許銓, 1834. 5. 8 ~ 1909. 11. 12)과 어머니 순천 장씨(順天 張氏, ? ~ 1915. 1. 16)[5] 사이의 무녀독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조선 세종 때 좌의정을 지낸 명재상 허조의 후손이며 삼국유사면 화수리 입향조인 허민(許慜, 1588 ~ ?)의 10대 종손으로 태어났지만, 그가 태어났을 당시에는 이미 가세가 지극히 어려워져 있었기에 어려서부터 줄곧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에 진력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1910년 7월 경술국치를 겪고 난 후 줄곧 망국의 한을 품고 있던 그는 특히 일본인들의 한국 이주가 매년 늘어나고 조선인의 이권이 침탈되어가는 상황을 목격하면서 이를 분개히 여겨 동포들에게 일제의 침략상을 알리고자 계획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1918년 8월경 군위군 의흥면으로 통하는 마을 근처 도로 곁에 세워진 비석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격문을 붙여 동포들의 항일의식을 고취하였습니다.
비석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늘에는 두 태양이 없고 백성에게는 두 임금이 없다. 충성이란 곧 목숨을 다하고, 마땅히 힘을 다하는 것이다. 어버이를 섬기는 도(道)와 임금을 섬기는 마음이 우리에게 다르지 않는데, 어찌 다른 임금을 섬기겠는가. 너희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나라 일의 주인이 되었으니, 나라 잃은 백성이 어찌 아프지 않으며, 너희들이 어찌 원수가 아니겠는가. 너희들을 멸망시키고자 하지만 우리에게 역량이 없어 어찌해볼 수 없구나.
이후

그후 1919년 고종황제가 붕어하자 그해 2월 고종을 모실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낼 계획으로 터를 잡고 땅을 고르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5월 3일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습니다.
그 뒤 1920년 4월 22일 만기출옥 후 3일 만인 같은 달 24일 결국 옥고의 여독으로 순국하였습니다.
198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으며, 이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