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건 좀 심했는데?!
전남편 열받으라고 홧김에 결혼한 여자연예인이 있습니다.
대체 누구일까요?
6살 데뷔

윤복희는 1946년생으로 올해 78세이며, 6살이던 1952년 뮤지컬 ‘크리스마스 선물’을 통해 뮤지컬배우로 데뷔했습니다.
그녀는 또한 1963년 루이 암스트롱을 통해 필리핀, 홍콩, 싱가포르를 거쳐 영국, 독일(서독), 스페인, 스웨덴, 미국으로 건너가 1964년부터 1976년까지 미국 네바다 주 라스 베이거스에서 활동했습니다.
1967년 ‘웃는 얼굴 다정해도’를 포함한 7곡으로 앨범을 발매했으며, 한국에서 미니스커트를 유행시킨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미니스커트를 착용하여 화제가 되었습니다.
2번의 결혼과 이혼

윤복희는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경험했습니다. 첫 번째 남편 유주용의 아버지는 독일 유학파 출신 공학 박사였고, 어머니는 독일 출신 부유한 가정의 여성이었습니다.
윤복희 자신은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물리학과를 중퇴한 수재로, 서울대학교 장기자랑 대회에서 노래로 1등을 하면서 가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윤복희와 유주용의 결혼 초기는 순탄했으며, 시가로부터도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윤복희는 결혼 후 경제 활동을 그만두고 전업 주부가 되길 원했지만, 유주용은 윤복희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그녀의 매니저가 되어 가수 활동을 계속하도록 했습니다.
이로 인해 불화가 생겼고, 남편이 믿음을 갖지 못한다고 느낀 윤복희는 홧김에 이혼했습니다. 1976년 스캔들 당사자인 가수 남진과 결혼했다가 1979년에 다시 이혼했습니다.
솔직히

윤복희는 과거의 결혼과 이혼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습니다. 그녀는 “남진과의 결혼은 사랑 때문이 아니라, 유주용에게 실망해 홧김에 저지른 일”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윤복희는 “남진에게 사랑을 고백받고 그 순진성을 이용했다. 그의 고백이 실린 신문을 보고 남편이 스캔들에 신경 쓰는 모습에 실망해 남편을 보라고 그랬다. 남진을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고 회상했습니다.
루머 해명

그녀는 두 번째 결혼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6개월 만에 “미안하다. 없던 일로 하자”며 남진에게 반지를 돌려주고 집을 떠났습니다. “새벽 4시에 통행금지가 풀리자마자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윤복희는 남진에 대해 “날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며 잘해줬다. 헤어진 후에 나온 폭행설이나 날 내쫓았다는 루머는 모두 거짓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녀는 전 남편 유주용과의 재결합을 거절하며 혼자 사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두 남자에게 아픔을 줬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열심히 관객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말하며, 1978년부터 혼자 살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남진은 1945년생으로, 1965년 ‘서울플레이보이’로 데뷔한 후 ‘님과 함께’, ‘가슴 아프게’, ‘미워도 다시 한번’, ‘빈잔’, ‘둥지’ 등 다수의 히트곡을 발표한 유명 가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