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잃은 부모마음 오죽할까요” 평생 모은 전재산으로 실종아동 00명 찾아준 각설이 탐정 이야기

자신의 아이도 아니고 남의 아이를 위해 사비로 직접 실종아동을 찾는 각설이 탐정이 있습니다.

그가 구해낸 아이만 00명이라는데..대체 무슨 사연일까요?

각설이 탐정의 시작

1991년 6월, 인천 월미도에서는 독특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거지 분장을 한 세 명의 각설이패가 공연을 펼치고 있었고, 이를 보기 위해 약 200명의 관객들이 모였습니다.

공연이 한창일 때, 무대 한쪽에서는 개구리 소년들을 찾기 위해 전단지를 배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들은 아이들의 아버지였으며, 슬픈 표정으로 “우리 아들을 꼭 찾게 해달라”며 간곡히 호소했습니다.

직접 찾겠다

이 사건은 나주봉 씨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당시 전단지 500장을 받아 배포하면서, 자신의 삶의 방향을 바꾸기로 결심했습니다.

나씨는 자신의 사비를 들여 전단지 2만장을 추가로 제작하여 배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개구리 소년들의 가족들을 찾기 위해 전국을 돌며 소년들의 사진이 담긴 1.5톤 트럭을 운전하기도 했습니다.

나씨의 노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어린이 실종 사건이 발생한 장소에 찾아가, 자신의 노력으로 실종된 아이들 중 600명 이상을 찾아내는 놀라운 성과를 이루어냈습니다.

경찰보다 빠른 각설이 탐정

나주봉 씨는 물건을 파는 일보다 아이들을 찾는 일에 더 큰 열정을 쏟았습니다. 어린이 실종 사건이 발생하면 누구보다 먼저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1991년 1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발생한 이형호 군(9)의 유괴 사건은 나 씨에게 또 다른 도전이었습니다. 이 군은 사건 발생 44일 후인 그해 3월 13일, 잠실대교에서 서쪽으로 약 1.5km 떨어진 배수로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 씨는 더욱 활발하게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언론에서 이 군 유괴범의 공개 수배가 시작되자, 나 씨는 TV 방송을 통해 이 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강남경찰서로 달려가 유괴범의 목소리가 담긴 테이프를 입수했습니다.

그는 자비를 들여 이 테이프를 제작, 전국을 돌며 배포하는 데 힘썼습니다. 4년 동안 약 3,600만 원을 들여 6만 개의 테이프를 만들었고, 이를 통해 범인 검거에 직접 나섰습니다. 이러한 활동으로 그에게는 ‘각설이 탐정’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형호 군 사건의 범인은 결국 잡히지 않았고, 사건은 미제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나 씨는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시민의모임(전미찾모)을 설립하고, 이 단체의 회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근황

그는 전국에서 100만 장 이상의 전단지를 만들어 뿌리며, 2001년에는 ‘제13회 서울시민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또한, 매년 개구리 소년들이 실종된 날에는 대구 달서구 와룡산에서 추모제를 지내며 실종 아동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나씨의 이러한 헌신적인 활동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실종 아동 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